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회사는 직원간의 평가에 있어서 굉장히 불투명한 부분이 많았다. 고과를 잘 받은 사람은 왜 잘 받았는지, 못받은 사람은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못받았는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심지어 너는 애사심이 부족해, 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을 수 없었다. -_-) 관련된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에 생산관리 KPI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매일매일 새벽1시, 2시에 일을 마치고, 끝나고 상사를 따라서 술 한잔 하고 집에 가면 새벽 3시 4시. 도저히 내 회사생활에 대한 것과 개인적인 발전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나에게 던져진 메일을 읽고 일을 쳐내고, 다시 메일을 보내고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해도 새벽까지 모든 메일을 다 읽을 수 없었을 정도 였다. (내가 아직 일이 느려서 그랬을 수도 있다.)
1년이 지나고 평가를 받고, 2년이 지나고 평가를 받고, 3년 정도가 되던 시기에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가?" 에 대해서 조금씩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평가 시스템에 나의 KPI 성적을 잘 입력하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평가를 못받는 것은 남들보다 낮은 KPI 점수 때문인가? 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평가 시스템을 살펴봤다.
KPI 종류도 무진장 많았다. (보다가 지칠정도) KPI 이름을 듣고도 도대체 뭐를 계산한 수치인지 알수도 없을 정도의 많은 KPI 가 존재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던것.
매출실적
나는 생산관리인데? 매출실적은 영업의 평가 지표가 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좋게 해석하자면, DM 에 대응 하는 생산을 100% 맞추어 주면 영업에서 잘 팔았기 때문에 매출이 좋아지고, 90% 생산을 했다면 90% 만 팔수 있기 때문에 매출이 줄어든다. 그래서 생산관리를 생산을 잘 해야 이 매출실적이 올라가고, 평가를 잘 받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지표의 분자, 분모는
판매실적/경영계획
이었다.
경영계획이라는 것은 작년에 세운 올해의 계획, 그리고 경영진에서 만들어준 굉장히 높은, 이상적인 매출계획이다. 올해 경영계획이 100만원인데, 실적을 100만원 하면 굉장한 성과다. 보너스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이상적인 금액이 바로 경영계획이다. 보통 경영계획이 100이고 실적이 50이면 그냥 저냥 열심히 일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분모에 경영계획이 떡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매출실적이라는 KPI 지표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없었다. 평가는 부서별 상대평가인데, 모두들 다 이 매출실적이라는 지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내가 점수가 낮으면 다른 사람들도 낮은 점수 (다 같은 점수) 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상대적으로 점수차가 나지 않는 다는 점이라는 것도 삭제해야할 이유중에 하나였다.
1. 비현실적인 계획 (경영계획은 비현실적인 목표)
2. 상대적으로 평가가 어려움
두가지의 이유로 이 KPI 를 개선 요청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일단 분모의 경영계획 자리를 바꿔야 했다. 작년에 세운 경영계획 말고, 전달에 세운 이번달의 매출계획 중간계획으로 하면 어떨까? (매출실적/중간계획) 그러면 1년치 매출실적의 점수는
[백업이 가능한 경우]
(1월 매출실적 + 2월 매출실적 + ... + 12월 매출실적) / (1월 중간계획 + 2월 중간계획 + ... + 12월 중간계획)
이렇게 구하면 될까? 이렇게 한다면 1월에 매출이 조금나와도 12월에 계획 보다 더 팔면 백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니면 이렇게 구하는 방법도 있다.
[백업이 불가능한 경우]
[(1월 매출실적 / 1월 중간계획) + (2월 매출실적 / 2월 중간계획) + ... + (12월 매출실적 / 12월 중간계획)] / 12
각달의 점수를 100점 만점으로 구해서, 다 더하고 12로 평균내는 것. 그리고 이 상황에서는 각달의 점수는 100점을 넘을 수 없다는 가정을 넣으면 1월에 차질을 12월에 백업 할 수 없다. 각달마다 죽어라고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매출실적, 즉 매출을 올리는 것이 중요해지는데, 매출은 누가 만드는가? 영업이 만든다. 영업이 잘 팔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는 알겠지만, 생산관리 KPI 의 의의와는 거리가 좀 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수정을 해봤다.
생산량 / Demand
영업이 요청한 demand 대비 생산완료한 수량. 하지만 이것은 안된다. 재고가 있는 제품의 경우 생산을 하지 않고 판매를 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지표로 잡으면 빵꾸가 난다. 그래서 다시 아래와 같이 수정을 해본다.
RTF / Demand
이게 실제 내가 업무할때 사용하게 된 최종 KPI 다. 매출실적이라는 허황된 KPI 는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매출실적보다 굉장히 심플해졌고, 어떻게 해야 이 KPI 의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함과 동시에 그 고민이 회사에 이익이 되도록 영향을 주게 된다. 자 그럼 어떻게 이 점수는 높게 받을 수 있을까?
- 1. 분자를 늘리는 방법, RTF를 최대한으로
영업이 요청한 demand 대비 RTF를 준 수량, 즉 판매가능하도록 준비를 한 수량이다. RTF라는 숫자 자체가 DM 보다 늘어날 수 없다는 제약도 이미 있어서 100% 이상으로 올라갈 여지도 없다. 하지만 재고가 이미 많은 제품의 경우, 생산을 다시 해야 하는 제품보다 RTF 를 주기 편하다는 이점이 있어서, 생산관리 담당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미리 재고를 왕창 만들어놓을 수 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아 난 모르겠고, 그냥 많이 만든다) 재고는 많이 남을지라도 RTF 를 빵꾸내지는 않을 테니까. 이러한 점은 재고회전율이나 재고수량KPI 를 다시 만들어서 보완을 해야 한다. 재고를 많이 만든다면 RTF/Demand 의 성적은 좋아도, 재고수량KPI 의 성적이 나빠지게 하는 것이다.
- 2. 분모를 줄이는 방법, DM 를 최소한으로
DM 를 최소한으로 만든다고 하니까, 뭔가 좀 이상한데 (매출을 줄이겠다고?) 이 이야기가 아닌, 허상의 DM 를 찾아내서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간혹 영업에서 대충 넣어놓은 DM, 실수로 수량을 늘려서 입력한 DM, 매출압박에 못이겨서 넣어놓은 DM, 실제 고객사의 주문이 삭제 되었는데 시스템에 삭제 반영이 안된 DM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런 DM 를 검토해서 영업와 협의, 정확한 DM 반영을 유도 하는 것이다.
1번에서 재고를 많이 만드는 경우를 보완하기 위해 재고일수 등의 KPI 를 다시 설정한다고 했는데, 이런경우도 있다. RTF를 무리하게 설정해서 RTF의 성적을 좋게 한 다음에 실제 생산계획대비 생산실적을 빵꾸 내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이는 또 다시 "생산실적 / 생산계획" 의 KPI 로 보완해야 한다. 허무맹랑한 RTF를 줄 수 없도록 보완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매출실적 (매출실적/경영계획) 이라는 허무맹랑한 KPI 를 > ① DM대비RTF비율 (RTF/Demand) + ② 평균재고일수 + ③ 생산계획대비생산실적 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고 긍정적으로 수정을 했다.
아마 내가 회사에서 한 첫번째 불합리의 개선 요청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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